" 생각하지 않는 건 죄다 "
한나 아렌트와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깊은 성찰
어느 날, 나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시 펼쳤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머리를 쥐어뜯으며 원서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번역본을 읽으면 조금 나을까 싶었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읽을수록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 얼마나 깊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이히만, 그는 누구였을까?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다루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아르헨티나로 도망쳐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짜 신분으로 숨어 살았다. 하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첩보기관 모사드가 그를 납치해 예루살렘으로 데려왔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 재판은 단순히 한 나치 전범을 단죄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의 요청을 받아 이 재판을 기록하며, 인간의 악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악인이 될 수 있는가?
재판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일관되게 주장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나는 톱니바퀴에 불과하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인 악의를 가지고 유대인을 학살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상부의 지시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더 나아가 그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인용하며, 자신이 법과 도덕을 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렌트는 이 대목에서 충격을 받았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보편적 도덕률을 의미하며, 이는 모든 인간이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다는 전제하에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히만에게 보편적 도덕률이란 히틀러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는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조차 고민하지 않았다.
결국 아렌트는 그를 악마적인 괴물로 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특별히 잔인한 인물도, 사악한 계획을 세운 악인도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었다.
명령을 따르는 것이 도덕적일까?
아렌트는 재판 과정을 통해 우리가 보편적인 도덕률이라고 믿고 따르는 것이 정말로 보편적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아이히만처럼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는 태도는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악을 낳았는가? 법을 따르는 것이 곧 도덕적인 것은 아닐 수 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유대인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특히 아렌트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유대 지도자들의 협력 사실을 기술한 부분에 대해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또한 그녀가 재판을 정치적 쇼라고 지적한 것도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아렌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하고자 했던 말은 분명했다.
"우리는 우리가 따르는 법과 도덕이 정말 옳은 것인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악인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을 덮고 난 후, 나는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내가 따르고 있는 도덕적 원칙은 정말 보편적인가?"
"혹시 나는 그저 사회가 정한 기준을 따라가며,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히만은 특별한 악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가 생각하기를 멈췄을 때, 역사는 그를 학살의 공범으로 만들었다.
이 책은 단순히 나치 전범의 재판 기록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악에 물들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거울과도 같다.
이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